슬로박 이야기
최근에 이탈리아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건 천천히 전해 드리기로 하고...
슬로박 얘기를 좀 더 할까요?
슬로박에 대해서 할 얘기는 많치요.
인터넷에서 따온 슬로박에 대한 글을 천천히 올려 볼께요.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의 좀 더 세력이 작은 부분이었던 슬로바키아는 1989년 '벨벳혁명'이후 어지럽고, 활기없는 도시가 되었다. 동유럽 블록을 제건하는데 자기 몫을 쥐고 있긴 하지만, 프라하 스타일의 glits와 요구는 없다.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놀라운 수준의 문화 생활을 갖춘 작고 활기찬 도시이다. 높은 타트라스 산맥이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을 뒤덮고 있고, 슬로바키아 시골의 농민 전통은 마을마다 여전히 명확하게 남아있다.슬로바키아인들은 무척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들로 자기 나라를 잘 여행할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통계 자료
국명 : 슬로바키아 공화국
면적 : 49,036 sq km (19,124 sq mi)
인구 : 540만 (인구 증가율: 0.5%)
수도 : 브라티슬라바 (인구 447,000)
인종 : 슬로바키아인, 헝가리인(11%), 루마니아인(1.5%) 체코인 (1%)
언어 : 슬로바키아어, 체코, 헝가리어
종교 : 60% 로마 카톨릭, 30% 개신교
정부 : 의회 공화주의
대통령: 미쿨라스 드주린다
지리 및 기후
슬로바키아는 유럽의 중심에 있는데 카파시안 산맥의 북서쪽 끝에 걸쳐있고, 북쪽으로는 폴란드 평원과, 남쪽으로는 헝가리 사이에 위치해 명확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장대한 High Tatra alpine range는 슬로바키아의 북동쪽 국경을 따라 있고, 폴란드와 공유하고 있다.
게흘라호프스키(Gerlachovsky)가 타트라(Tatra)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슬로바키아의 거의 80%가 해발 750m 이상이지만, 니트라(Nitra) 남쪽 부분은 비옥한 평야로,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뉴브 강까지 뻗어있다. 슬로바키아는 북서쪽으로는 체코와, 남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동쪽으로는 우크레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벌목에도 불구하고 너도밤나무와 가문비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국토의 40%를 차지한다. 곰, 늑대, 스라소니, 마멋, 샤모아, 수달, 밍크등의 야생 동물이 타트라산 고지대에 서식하고 있다. 타트라산 외에 있는 국립 공원에도 적은 수지만 이러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사슴, 꿩, 자고, 오리, 기러기, 황새, 뇌조, 독수리, 콘도르등이 교외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슬로바키아의 교외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겪은 규모가 큰 도시라 하더라도, 다른 유럽 나라만큼 오염되지는 않았다.
슬로바키아는 습한 대륙성 기후로 인해 여름에는 덥고 비가 많으며,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으며, 기온변화가 완만하다. 어느 곳이건 7월이 가장 덥고, 1월이 가장 춥다. 12월에서 2월까지는 저지대라 하더라도 영하로 떨어지고, 산간지방은 더욱 춥다. 실제로 '건기'는 없고, 여름날의 길고 뜨거운 날씨도 갑작스런 폭풍으로 깨지기도 한다. 가장 건조한 지역은 슬로바키아의 남부 저지대이다. 겨울에는 40일에서 100일간 눈이 내리며(산간지역은 130일), 저지대에는 안개도 낀다.
역사
슬라브족이 AD 5세기경 현재의 슬로바키아지역을 점령하였다. 833년, 모라비아의 왕자가 니트라를 정복하고, 대모라비안 제국을 건설했는데 여기에는 현재의 중앙및 서부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의 일부, 헝가리, 독일등이 포함된다. 863년 데쌀로니키(Thessaloniki) 형제와 선교사들, 치릴(Cyril)과 메쏘디우스(Methodius)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제국이 그리스도교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907년, 대모라비안 제국은 이들의 통치자들의 정치적 음모와, 헝가리의 침입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1412년 부터 1772년까지 슬로바키아 동부 지역이 폴란드에 속해있긴 했지만, 1018년까지는 슬로바키아 전역이 헝가리에 편입되어, 그후 900년간 그러한 상태가 계속된다. 13세기의 타타르의 침입후, 헝가리의 왕은 독일 섹슨족을 불러들여 인적이 뜸한 북동부 접경지역에 정착시켰다. 터키가 헝가리를 쳐들어온 16세기 초, 헝가리의 수도는 부다(Buda)에서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로 바뀌었다. 1686년에 오스만 세력은 결국 다뉴브 남쪽으로 밀리게 되었다. 1867년 오스트로-헝가리안 이중 왕정의 성립으로 헝가리는 국내 문제에서 자치권을 갖게되었고, 1868년과 1918년 사이에 슬로바키아에서는 '헝가리화'정책이 강화되었다. 1907년 헝가리어가 초등교육의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이에 대항하여, 슬로바키아 지식인들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체코와 친밀한 문화적 교류를 시작하였다.
단일 체코-슬로바키아 개념이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로-헝가리가 패한후, 슬로바키아, 루데니아(Ruthenia), 보헤미아, 모라비아가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되었다. 강경한 체코의 중앙집중화 경향이 많은 슬로바키아인들을 소외시켰고, 1938년 뮌헨조약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영토를 독일에 할양하도록 강요받게되고, 슬로바키아는 연방 정부안에서 그들의 자치권을 선포하였다. 1939년 히틀러의 군대가 체코를 공격하기 하루 전날, 몽시노르 요셉 티소(Monsignor Jozef Tiso)(1947년 전범자로 쳐형)에 의해 파시스트 꼭두각시 정부가 세워졌고, 슬로바키아는 독일연합에 가담하게 되었다.
1944년 8월, 슬로바키아의 파르티잔들은 슬로바키아인의 봉기를 주도해, 독일인들과 몇달간 충돌하였다. 프라하가 자유화되기 두달전인 1945년초, 소련의 주도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코시체(Kosice)에 세워졌다. 전후 세워진 두번� 체코 정부는 연방 정부였었다가, 1948년 2월 공산당이 정권을 물려받으면서 행정부가 다시 한번 프라하에 집중되게 되었다. 새로운 공산 정권을 주장하던 많은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서 기아와 고문, 사형으로 사라져갔다.
1960년 헌법이 체코와 슬로바키아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었지만, 1968년 알렉산더 두브체크에 의해 소개된 '프라하의 봄' 개혁만이 이러한 개념을 이행하였다. 1968년 8월, 소련군이 민주적인 개혁을 진압하였고,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공화국이 이론적으로는 동등한 파트너이긴 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프라하에 남아있었다. 1989년 한해동안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공산주의의 쇠락이 슬로바키아 국수주의의 부활과, 슬로바키아 자치로의 열망을 부추겼다. 좌익 국수주의자인 블라디미르 메치아르가 1992년 6월 당선된후, 슬로바키아 정부는 1993년 1월 1일 투표를 통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연방제가 평화적으로 이행되었다. 1994년 3월 메치아르는 경제정책의 실패와 독재정치로 인하여 의회의 불신임 투표로수상직을 사임하게 되나, 몇달 후 있었던 국민 투표후, 새로운 연방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1995년 이래로 경제는 향상되었으나, 메치아르의 반(半)독재정치로 비난을 샀다. 공화정을 보호하는 법으로 인해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든 체포될 수 있었고, 언론은극도로 통제되었다. 슬로바키아어를 유일한 공식언어로 지정함으로써 다수의 헝가리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자신들의 모국어를 쓰는 것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